[도서 리뷰/ 책 추천 / 후기] : 소문의 시대 / 복잡한 세상과 소문, 그 시대에서의 통찰
★★★☆☆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의 근거가 된다'는 작가의 말은 일명 '카더라'를 대하는 우리의 말버릇이자 태도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소문의 과학>, <소문의 수수께끼> 등 가장 원초적이고 오래된 미디어인 '소문'의 특성을 심도 있게 다룬 일본인 저자 마츠다 미사의 또 다른 작품이다. 저자의 작품은 주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중점으로 집필되곤 하는데 자국에서의 소문의 문제점까지도 숨김없이 드러내는 데에 솜씨가 좋다. 주로 자국에서 있었던 일을 많이 다루고 '소문'을 파악하기보단 '일본에서의 소문'을 다룬다는 점에서 아쉽다. 이 부분이 위와 같은 별점을 매기는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기도 하고 소문 및 찌라시가 만연한 사회임은 동일하기 때문에 읽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먼저 책에 제시된 용어를 정리 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 책을 접하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이긴 하나, 저자가 첫 장부터 용어를 정리하고서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책 곳곳에 퍼져 있는 용어의 정의를 간결하게 선이해 해보기에 좋다.
소문: 사적인 관계성을 통해 확산되는 정보
흑색선전: 데마고기즘(Demagogism)을 어원으로 하는 단어로, 정치적 의도에 따라 상대를 중상모략할 목적으로 유포되는 정보. 일종의 낙인찍기 효과를 발휘하며, 접한 당시에는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조언(날조): 근거 없는 사실을 꾸며 말함
유언비어(流言蜚語)와 가십(gosip)의 차이: 유언비어는 주로 사회적인 것을 다뤄 피해를 입으면 사회적 역기능이 작용하지만, 가십은 사적인 대화의 소재가 되는 개인에 대한 소문일 뿐, 상대적으로 시답잖은 정보로 평가된다.
풍평: 세간의 평판
도시전설: 서사, 위트로 이루어지며 대체로 소문보다 길다.
이 책에선 여러 용어로 다뤄진 현상에 대해서도 '소문'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간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정상화의 편견(Normalcy Bias)' 파트였다. 이는 눈앞의 위험을 일상생활의 연장선상에서 정상 범위 안으로 과소평가하는 것을 일컫는데 저자는 일본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난 경보를 사례로 들었지만 이 책의 독자의 국적에 따라 각국에서의 사건사고가 떠오를 것 같다.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안전불감증'의 사례다. 필자는 세월호나 이태원 압사 사고를 떠올렸다. 피해의 규모는 상황의 심각성에서만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 태도, 사건 발생 이전 교육의 실태에서부터 야기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매체의 차이에 따라 전달되는 소문의 모습에 차이점이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한때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빨간 마스크'라는 괴담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거리를 다니며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벗고 '나 예뻐?'하고 물어보고 어떤 대답을 하든 똑같이 입을 찢어버린다는 괴담이다. 만약 이 구전이 입에서 입으로 확산되는 소문이 아니라, 책으로 읽어 소문난 경우라면 어떨까? 현재까지의 미디어와 소문에 관한 연구는 소문의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었지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 같다. 즉, 저자는 좀 더 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함 역시 시사하고 있다.
물론 소문의 중요도 차이는 단지 미디어 때문만이 아님은 저자도 주목하는 바이다. 미디어를 포함한 사회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독립 변수만 주목해선 종속변수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 어느 한 쪽만 고려하고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사회과학적 연구가 요구된다.
이 글의 맨 위에 굵은 글씨로 적어 놓았듯 필자 역시 소문이 생겼다는 자체로 그 소문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연예계, 정치계의 사람들의 이목을 끌 법한 찌라시나 이슈를 100% 신뢰하고 믿지는 않았지만 해명글이 올라오거나 법적으로 결백을 인정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공인을 볼 수가 없었다. 이런 사례가 필자가 우려한 '막연한 이미지'의 확산일 것이다. (책에서 근거로 든 사례 대부분이 저자의 출생국 사례라 또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적절한 사례이므로 소개하려 한다.) 일본 내각부가 2006년에 실시한 치안에 관한 의식 조사는 실제 범죄의 발생 빈도가 낮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언론과 미디어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자극적인 내용을 특정 목적을 위해 다루거나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 퍼진 거짓 소문 탓일 것이다.
책에서 제시했듯 우리는 상호 원할한 관계와 부조를 위해 자신이 얻은 정보를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 설령 그 정보가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보다 손해에 크게 반응하는 인간의 경제학적인 면모를 비추어 봤을 때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한 선택을 서슴없이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특정 **은행이 파산할 수도 있다'라는 소문을 듣는다면 대부분은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려 당장 줄이라도 설 것이다. 따라서 거짓 소문이라도 주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혹은 이런 뉴스에서 다루지 않는 고급 정보를 제공하면 나중에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단 주변인에게 '선의'를 베풀고 보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 역추적해 소문의 유포자를 찾아보았자 그 사람 역시 어디선가 들은 얘기일 뿐이며, 해당 기업에 대한 악의 없이 주변인에게 선의로 전달한 정보였기 때문에 처벌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도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나 사실여부 판단이 요구되지만 소문이 발생한 초기이거나 주변에 전문가가 없는 경우 이조차도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밖에도 굉장히 많은 얘기가 다소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소문뿐만 아니라 뉴스, 전화기, 휴대폰, TV, 가십, 신문 등도 다루고 있다. 휴대폰이 생기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연락처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선택적 인간관계'에 집중하게 된다는 저자의 색다른 관점과, 필요가 발명을 만든것이 아니라 발명이 필요를 만든다는 등의 지적은 이 책을 통해 사고의 지평선을 넓힐 수 있게 돕는다. 약간의 아쉬움도 묻어나는 책이지만 전반적인 사회학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할만하다.